아버지, 처음으로 아버지께 편지를 쓰려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눈도 많이 내렸습니다. 그간 많이 외롭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제가 처음 아버지를 뵌 것은 맞선 자리였었지요. 시골 분 치고는 꽤 멋진 중년 신사분이셨습니다. 맞선을 보던 날 아버지께서는 처음부터 저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지요? 그렇게 눈에 다 차지도 않는 제가 결혼 후 하남에 가구점을 열었지요. 경험 없이 처음 벌였던 사업을 망치고 신불자가 되어야 했지요. 그 후 동명동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부도라는 것은 저 혼자만 힘들고 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지키지 못한 신뢰감이 몹시도 힘들게 했지요. 그런 시기에 마산면 뜬섬에서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지요. 그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어요. 저희는 광주 생활을 접고 해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지요. 그로부터 한 3개월이 흘렀을까요. 아버지 당신께서도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지요. 하늘은 왜 그리도 견디기 힘든 시련을 우리에게 한꺼번에 안겨주었을까요.
병원 치료 후 건강한 모습의 아버지께서 우리 곁으로 오시길 바랐지만, 그마저도 우리에겐 바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외상에 의한 치매를 앓게 되셨고, 외모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렸지요. 치매로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진 만삭이었던 저를 많이도 울게 했고, 힘들게 하셨지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나날들을 버텨낸 지금, 이제와 돌아보니 많은 회한이 앞섭니다.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비록 제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시겠지만 저는 아버지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가 되려고 많이 노력한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농사일도 아범을 도와 열심히 하구요. 보험 모집일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버지, 저는 지금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이들 학원에도 보낼 수 있고, 통닭도 사줄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요. 아버지 좋아하시는 맛있는 음식도 막걸리도 다 사드릴 수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 이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잘 보살펴드릴 수 있어요. 늘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또 제 자신을 갉아대던 가구점 빚도 이제 다 갚았거든요. 빚에 찌들었던 삶을 털어내고 나니 아버지만 건강해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 아버지의 속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저를 보고 아이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아버지의 진정이라고 여겨도 되겠지요. 더 이상 편찮으시지 말고 지금처럼 저희 곁에 있어주세요.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저이지만 최선을 다해 모실게요. 이젠 제가 아버지의 바람막이가 되어드릴 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큰 며느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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