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텔레비전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봤다. 함께 시청한 아내의 말로는 요즘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인기 절정의 프로그램이라 한다.
뛰어난 가창력과 개성 만점의 중견들이 오디션 형식으로 진행하는 가요 서바이벌게임이다. 열창하는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청중평가단과 매니저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호흡까지 쥐고 흔든다.
혼신을 다한 노래가 끝나면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관객들은 얼이 빠져 기립 박수로 화답한다. 마지막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열창하는 가수들의 열정은 문외한이 봐도 아름다운 그림이 분명하다. 가수의 열정과 청중의 열망이 시청자들을 긴장과 몰입의 경지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흡인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를 잘 부른 사람에게 상과 칭찬을 건네는 경연이 아니다. 두 차례 경연을 통해 출연자 일곱 명 중 꼴찌를 털어 내는 방식의 서바이벌 쇼다. 막강 참가자들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꼴찌를 면했으면 하는 진솔한 바람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오디션 형식의 이 무대가 중견 가수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관객들의 긴장을 유발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가고 있다. 결과는 다면평가 방식이라 끝나는 시간까지 하차할 한 사람을 예측할 수 없어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지고 완성미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도 자기를 온통 드러내야하는 평가와 경쟁을 수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숨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다 잘 아는 약점이라도 드러나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자청한 이들도 제 순서가 올수록 흔들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러는 노래 중에 제 감정의 피치를 끌어올리지 못해 스스로 중단하는 고통을 자초하기도 한다. 현란한 무대의 조명과 객석의 환호성에 길들여진 이들도 무대울렁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도 일단 ‘어디 한 판 놀아보자!’며 자기최면을 걸고 나서면 무섭게 변하는 진정한 프로가 된다. 제대로 ‘미쳐 즐기는 멋의 감동’이 가히 예술이 된다.  
조금은 유치한 듯한 타이틀 ‘나는 가수다’를 되뇌어 보다가 ‘나는 누구인가?’에 생각이 미친다. 생각을 굴리는 동안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아득해지며 마음이 요란해진다.    
이제껏 지고 살아온 이름,  ‘나는 아버지다.’, ‘나는 남편이다.’, ‘나는 동생이다.’, ‘나는 오빠다.’ ‘나는 선생이다.’, ‘나는 수필가다.’ …. 한 몸에 짊어진 이름이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누구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동생으로, 오빠로, 선생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본다. 제아무리 되짚어 봐도 별로 신통한 게 없다. 내 진면목과 본래의 이름값은 부등식이다. 무대를 사로잡은 후 결과를 기다리는 일곱 명의 출연자 속에 초라한 내가 서 있다.
그들은 이미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아낌없이 보여주었기에 후회가 없다 한다. 무대 위에서 미쳐 즐겼기에 한이 없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들이 ‘미쳐 즐긴 멋의 감동’을 잔잔하게 전하는 동안 내 마음은 더욱 초라해져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무대 위의 그들처럼 ‘나는 선생이다.’를 힘차게 외쳐본다. 내가 선생이라고 선언한 만큼 진정성과 정체성의 의미가 더욱 확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은 내 삶의 밀도가 더 촘촘하고 세밀해지길 바라는 욕심이다. 아니, 교육의 무대에서 내려서는 그날까지 아이들과 함께 ‘미쳐 즐기는 멋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선생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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