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드디어 끝났다. 온갖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젖혔다. 비를 물리치고 난 바람을 상쾌하게 맞이한다. 싱크대, 화장대, 책상 서랍 등 작은 서랍 하나하나 다 열어놓는다. 따갑지만 맑은 햇살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어젯밤 아이가 4박5일의 기차여행에서 돌아와 남도의 비와 바람과 흙냄새를 묻힌 옷가지들을 손질하고 수건과 행주 등도 푹푹 삶았다.
어릴적 샘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빨래하던 기억은 다시 해보고 싶은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두레박을 들고 대야에 방망이, 빨래비누 넣어 머리에 이고 지금처럼 장마가 그친 어떤 날 장갑도 없이 어린 손으로 한나절을 주물거리고 헐어지도록 방망이질 한 다음 넘실거리는 샘물을 퍼 몇 번을 헹궈냈다.
그땐 즐거울 수만은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니 여자아이들에게는 놀이 같았던 빨래터의 추억이다.
그래서 지금도 난 중요하고 가볍고 하얀 옷가지들은 빨래비누를 칠해 주물러두었다가 휘휘 헹구어 빨래건조대에 널어놓고 바라본다. 마음이 개운해진다. 기억속 시골집 앞마당 빨랫줄의 빨래가 바람에 유영하듯 내 마음도 살랑거린다.
어느새 오후, 오십을 넘은 아줌마에게 시간은 너무나 쏜살같다.
며칠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원시인들의 식단이라는 조미나 가미를 최소화하고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식단이 눈길을 끌었다.
앞치마를 벗고 모처럼 우산 없이 뽀송거리는 길을 걸어 시장엘 가니 할머니가 금방 밭에서 가져온 듯한 상추, 고추, 가지, 잘 벗겨 놓은 고구마순 그리고 옥수수, 등을 벌여놓았다. 쩍쩍 갈라진 남작 감자도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을 한아름 사들고 와 깨끗이 씻어 데치고 무치고 쪄 차려내니 작은 아이만 빼고 두 남자는 너무나 맛있게 먹는다.
단순함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남자들 감정이 복잡한 여자들에겐 원시인처럼 꾸밈없이 거침없이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난 담백한 남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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