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분이는 내 유년의 소꿉놀이 친구이다. 우리 할아버지 집 옆에 나란히 그네의 집이 붙어있어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까지의 유일한 내 친구였는데 3학년도 못 마치고 그네의 아버지가 목포에 있는 그릇공장에 취직이 되어 이사한 후로 헤어져야 했다.
몇 년에 한번씩, 자기 할아버지 집에 올 때에 만나면 밤새도록 한숨도 안자고 그 어릴적 가시내로 태어난 죄로 네 설움 내 설움을 풀어헤치며 그렇게 사춘기도 거치고 결혼도 하며 지천명도 훌쩍 넘겼다.
점분이 엄마가 그 가시내를 변소에서 용쓰다가 났는데, 엉덩이에 눈깔사탕만한 점이 있어서 점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했다. 점분이는 평생 그 이름에 한이 되었는데 내년에 딸년 결혼을 앞두고 장모 이름을 예식장입구에 도저히 점분이라고 걸어 둘 수가 없다하여 예진이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 사연을 절절히 가슴으로 느낀 내가 조목조목 판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쏙 나게 문장을 작성하였고 보증까지 서주어서 개명허가가 되기에 이르렀다. ‘강예진’이라고 바뀌어진 호적초본이 나왔다며 전화에 대고 엉엉 쳐 울기에 마음이 천연암반수처럼이나 깨끗하고 착한 나는 거금 5만원을 들여 케이티엑스를 타고 목포로 내달았다.
점분이는, 내가 보증을 서준 값으로 목포 북항에 가서 세발낙지 20마리를 호탕하게 시키고선 “입새주 값은 네가 내라” 했다. 얼핏보면 낙지값도 못하게 생긴 여자 둘이서 꿈틀거리는 낙지에 연포탕까지 스무 마리를 먹고 입새주는 각 1병씩하고, 유달산 일등바위에 앉아서 상큼한 바람을 마시면서 “예진아~~~”하고 목구멍이 터져라 내가 불러줬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예진으로 이름 바꾼지도 모르고 “네 아는 아짐이 왔냐?”하고 물었다.
난, 그 가시내한텐 예진이보다도 점분이가 훨씬 더 어울린다고 취중에도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 손전화기에 그녀 이름은 ‘점. 분. 이’로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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