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마산면 용전리는 마산서초교가 있고, 그 앞으로는 호교리 바다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여름날, 같은 반 친구와 학교 끝나고 가까운 바닷가에 조개잡이를 가자고 약속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위험한 곳이라고 바다에 가지 말라고 하시곤 했다. 조개를 잡아 담으려고 집에 있던 미군야전 도시락을 들고 친구와 함께 그리 멀지않은 갯벌에 발을 들여 놓았다.
갯골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물고기들을 보니 너무 신비로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다보니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있었다. 조개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즐거웠던 시간은 끝이 났다. 남은 것은 걱정, 초조, 무서움뿐이었다. 잔뜩 웅크리고 대문을 들어서자 어머니는 팥칼국수를 끓이는지 마당에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연기를 피워 올리고, 할아버지는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계셨다.
나의 등장으로 시간이 멈춘 듯 두 분의 동작이 멈췄다.“너, 시방 어디 갖다 왔냐?”잠시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어머니는 치마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뒤뜰로 나를 끌고 갔다. 당시 스물아홉이었던 젊은 어머니는 힘도 좋았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잡혀가 어머니의 비밀병기로 숨만 쉴 만큼 맞아야 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큰손주인 나를 유난히 예뻐하시고 사랑하셨는데, 그날은 그저 바라만보시고 말려주시지도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날은 그게 아니어서 서운한 마음에 펑펑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그 때 매를 때리시던 젊은 어머니는 이제 계곡면에서 고향을 지키며 농사일을 하시는 70세 할머니가 되었고, 유난히 손자를 사랑하셨던 할아버지는 오래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제는 나 역시 세월이 흘러 군대 간 두 아들 그리워하는 아빠가 되었다. 지금도 바다를 보면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이 내 마음에 저미어온다. 이제는 그 진한 사랑과 보살핌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낀다.
언젠가 손자들이 바닷가 놀러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소리 없이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옛 추억을 회상해 본다. 아, 그때가 그립다.
추억은 꽃보다 아름답고 애인보다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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