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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서 꽃방석에 앉혀 봤소. 이날 평생 맘을 한번 편하게 해줘 봤소. 이 시상은 뭔 시상인가 모르것소!”깡깡 묻고 오면 편할 줄 알았네. 이렇게 뜬금없이 갈 줄 알았으면 암말 안 할텐디 그랬네. 허망하네. 허망하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오래 자리보전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한마디 한 것이 명치끝에 콱 백혔소. 한 번도 원망은 안 했소. 마지막에 힘이 부칩디다.
누워만 있어도 당신 그림자만 봐도 든든했는디 이게 뭔 일이요.
그날 막둥이 불러서 목욕하고, 이발에 단장하니 19살 가마꾼 사이로 내다보던 그 새신랑 얼굴입디다. 달같이 이쁩디다. 꽃같이 이쁩디다. 건강하게 한번이라도 살다 가재 얼마나 추울거나 얼마나 더울거나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좋은데 구경도 가고,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자식들도 잘 보살피고, 좋아하는 화초에 물이나 주고 사쇼. 아이고 아이고 먼 길 다리 아프겄네. 말동무 없어 얼마나 심심할거나. 월이 아버지, 좋아하던 꽃들이 많이도 피요. 벚꽃도 피고 지고, 진달래도 핍디다.
요새는 철쭉이 한창이요. 쉬엄쉬엄 꽃길 따라 가시요. 잘 가시요. 월이 아버지, 잘 가시요.
엄마는 무덤 근처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야 한다네요. 뭐가 그렇게 할 일이 많으신지. 엊그제는 비가 많이 와서 땟장을 뜯어내고 종일 오빠랑 손보시더니 묘는 1년은 따독거려야 된다고 날마다 가시네요. 아무래도 이렇게 푸념하시고 싶어 그러시나 봐요. 49제도 며칠 안 남은 터라 부쩍 더 외롭다고 하셔서 엽이 데리고 와서 지내고 있어요.
아빠, 감나무 새순이 나오네요. 올가을엔 아빠 없이 감 따겠네요.
그늘에 멍석 깔고 앉아서 이서방이랑 감 따면 고르시며“이쁘고 좋은 건 막내주마”하고 앉아 계셨던 그늘을 올 가을엔 어떻게 볼까요.“언제 또 올라냐?”“아빠는 서울로 시집간 애들은 1년에 몇 번 못 와 나처럼 자주 오는 딸이 어딨어? 이주엔 못 와.”“내일도 오고 모레도 오니라.”
시간이 많은 줄 알았어요. 늘상 아프시고 누워계시니 일상처럼 또 그런 줄만 알았어요.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더니 늦은 회한을 어쩔까요?“느그 엄마한테 잘해라.”그러셨지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요? 엄마가 계셔서요. 못다 갚은 그 사랑을 엄마에게 또 엽이에게 주면서 살아야지요. 이번 어버이날엔 한 송이 빨간 카네이션만 가슴에 피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울컥거리는 눈물은 마르고 쨍쨍한 봄볕에 응달이 드리우듯 그렇게 한 켠은 응달이 생겨 잠시 아프기도 하고 쉬기도 하겠죠.
그렇게 한 세대는 다음 세대에 응달이 되는 거겠죠? 아빠, 엽이 그새 많이 컸어요.“우리 막내 애기 낳는 거까지 봤는디 뭔 여한이 있것냐만은 그래도 욕심이 있다야.
걸어 다니믄 할애비 손잡고 과자 사줄텐디 그란다”고 하셨지요. 자식 낳고 길러보니 당신 사랑을 그 속내를 아주 조금 헤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철쭉꽃이 이삐다. 막내야, 꽃 같은 내 딸 막내야”곱게 머리 땋아 주시며 부르시던 노래를 불러봅니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홀로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가시는 길목마다 예쁜 꽃 많이 피었죠? 구경삼아 꽃길 따라 편히 가세요.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