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특화거리…지역역사·지역 특징 위에서 성공했다
해남군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60억원 규모의 원도심 상권활성화 사업에 나선다. 해남읍 원도심을 ‘땅끝 초콜릿 마을’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과연 이 사업이 성공할까. 초콜릿은 해남의 문화, 역사, 먹거리 그 어느 곳에도 해당되질 않는다. 한마디로 초콜릿을 가지고 새로운 창조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인데 전국에는 약 700여개의 특화거리와 특화마을이 있다. 이중 성공한 특화거리가 있는가 하면 실패한 곳도 있다. 이번 기획취재는 다양한 형태의 특화거리의 상황, 주변 환경의 변화, 문제점 등을 짚어보며 해남 초콜릿 특화거리의 가능성을 짚어보려 한다.
-편집자 주-
양림동 펭귄 문화마을
지역고유 역사에 펭귄 결합
광주 양림동 문화마을은 100여 년 전 광주에서는 최초 서양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다.
1904년 광주읍성 밖 광주천 건너편 양림동에 유진 벨, 오웬 등을 비롯한 서양인 선교사들이 모여 교회, 학교, 병원을 설립함으로써 기독교 복음 전파의 터전이 만들어졌다.
특히 도심에 있으면서도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풍광으로 양림동은 광주 5대 부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해서 양림동은 전통문화와 서양문화가 결합됐고 또 광주에서 전통 문화재가 가장 많이 보존돼 있는 근대역사마을이다.
하지만 첨단지구와 수완지구 등 신도시로 생활인구가 급격히 이동하면서 양림동 일대는 공동화를 맞게 됐다. 기독교 순례자들이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고자 가끔 찾아올 뿐, 여행과 관광을 목적으로는 방문 이유가 없는 곳이 됐다. 그런데 펭귄마을을 시작으로 양림동이 변화가 시작됐다.
2012년 아파트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원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더욱이 당장 철거 대상이었던 골목길에 대형 화재까지 발생하면서 동네를 유지하기는 더욱 힘든 상황이 됐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폐품을 이용한 정크아트로 골목길을 꾸미기 시작했고 거기에 대표 키워드로 펭귄을 집어넣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에 펭귄마을로 알려지면서 시민예술촌으로 발전했고 젊은 공예가들의 입점이 이어지면서 공방이 즐비한 공예창작촌으로 거듭났다.
여기에 광주시는 펭귄마을 중심으로 역사문화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 2014년부터 본격적인 문화마을 조성사업이 추진됐다.
도로와 골목이 정비된 양림동문화마을에는 미술관, 기념관, 갤러리, 근대 건축물 복원, 공예거리 등이 들어섰다. 그 결과, 양림동은 예쁜 벽화와 설치 작품,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자리 잡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변화는 관광객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 지나면서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자생력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크아트로 시작된 양림동문화 마을의 대표성은 공예거리로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다. 다양한 예술가와 공예가들이 이곳에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방문객들에게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은 물론 외부 관광객들까지 이곳을 찾으며 양림동의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양림동에서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문화재 야행, 근대역사탐방, 공예체험 등이 있다.
‘문화재 야행’은 역사투어, 체험, 전시, 공연, 음식 등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근대역사탐방 프로그램은 지역의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지를 탐방하며 광주의 근대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예체험 프로그램은 지역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다양한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많은 방문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양림동 문화마을은 연간 약 36만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는데 이는 하루 평균 약 1,000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방문객 수는 양림동이 광주에서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 속에서 몇 가지 문제점도 드러났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교통 혼잡과 소음, 일부 지역 주민들의 주거 환경 악화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낙후한 구도심의 활성화로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다.
광주 월곡동 고려인 마을
산단 있어 다국적마을로 성장
광주 월곡동에 위치한 고려인마을은 일제강점기와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고려인들이 정착한 지역이다.
고려인은 러시아로 ‘카레이스키’라고 불리는데,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키르기즈스탄, 아제르바지잔, 쿠르크메니스탄 등 소련에서 갈라진 러시아 인근 독립국가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총칭하는 용어다.
다양한 국가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들은 일자리 혹은 고향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가 1990년도다.
주로 산단이 많은 지역에 고려인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거점이 형성됐고, 광주 월곡동과 인천 연수구, 경기도 안산 등이 대표적인 고려인 밀집지역이다.
1990년 후반 월곡동의 고려인은 채 10여 가구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하나둘 모여 가구를 이루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현재 7,000여명까지 인구가 늘었다. 고려인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는 다른 나라 외국인과 달리 재외동포로 인정받기에 장기 비자 승인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문화권에 살아온 고려인들과 한국의 전형적인 동네가 병합되면서 월곡동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월곡1동과 2동은 보통의 광주의 골목과 완전히 다르다. 마치 서울 이태원처럼 다양한 언어가 오가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도 한국어를 쓰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골목상권도 변했다. 상점들은 한국어로 된 간판과 러시아어로 된 간판이 혼재해 있고 한국어 간판이 아닌 식당들은 주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취급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외국문화의 번창은 베트남과 중국인들을 불러들였고 이러한 문화는 ‘세계음식문화의거리’로 이어져 광산의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광산구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고 있으며, 광주시의 지원을 받아 생활환경 개선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고려인 마을에는 고려인문화관 ‘결’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또 고려인FM 방송을 통해 고려인들의 삶을 전파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광주 광산구는 고려인마을의 성장을 돕고자 외국인주민 전담부서까지 만들었다. 호남 최초 외국인주민 전담부서인 외국인주민과를 신설, 이주한 주민뿐 아니라 이주를 준비하는 고려인들의 안착을 돕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제교류를 확대, 문화적 다양성을 지역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인 마을도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로, 경제적 어려움과 일자리 부족 이다. 고려인들은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둘째로, 일부 고려인들은 주거 환경이 열악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고려인 마을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양림동 문화마을과 고려인 마을은 공통점은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지역 발전과 사회 통합을 위한 거점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인위적인 마을 형성이 아닌 주민들의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